집에 돌아와보니 아리샤인양...이랄까 부인이랄까, 아무튼. 제수씨에게서 소포하나가 거대한 모습으로 도착해 있었다. 그 상자를 요츠바처럼 달려듣어 뜯어보니 이런게 나오더라.
지름신을 끊으려면 인터넷을 끊으라는 간디의 말처럼(설마 믿는 사람?), 인터넷의 정보들을 통해 시작한 카드더스 컴플리트 박스 컬렉션은 또 이렇게 늘어간다. 이번엔 국내 모 완구업체를 통해 익숙한 사람도 많을 기갑신 엘가이야와 그 파일럿 네오건담을 둘러싼 이야기 기갑신 전설 되겠다.
사실 전작 성기병이야기는 해적판 카드다스로 인한 친숙함이라도 있었지만, 이 기갑신전설은 엘가이야와 건제네시스의 합체 기믹이 참 별로라고 생각했던지라 관심을 끊었고 덕분에 추억이랄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SD건담외전-나이트건담 시리즈는 전국전과 달리 인간 캐릭터들과 세력의 어레인지가 상상을 초월하는 전개를 보여주는 재미가 있고, 팬터지 세계관으로 어레인지된 SD건담, SD캐릭터들을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한 관계로 또 한번 민폐를 끼치면서 구하게 되었다. 게다가 오히려 나이를 먹고 보니 건제네시스의 기믹도 제법 재밌고 말이지.
시간이 늦은데다 오래도록 여운을 간직하고 싶어 바인더에 꽂는 작업은 아직 하지 않은 상태지만, 완결편이라 할 수 있는 황금신화-골드사가까지 앞으로 남은 컴플리트박스 시리즈는 2개가 남은 셈이다. 남은 시리즈들도 모으고 싶지만, 완결을 내지 못하고 사라진 환상의 나이트건담시리즈인 개투신전기(W건담편)의 완결편이 과연 나와줄것인가 하는 것도 관건이고, 작년 쯤 팬아트로 돌아다니던 더블오 나이트건담까지도 나와줬으면 하는 기대도 해본다.
.....그것보다 문제는, 애써 참고 있던 건담워에 신겐건담, 겐신건담, 나이트건담, 커맨드건담이 참전했다는 건데.... 뒤늦게 건담워를 시작해야 하려나...하는 불안이 엄습하는 중...ㄷㄷㄷ
무라카미 하루키. 18살 고3때 그를 알게 된 후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던가. 고3인 나이에 새롭게 일빠병+중2병+덕후중독을 앓으며, 맥주와 위스키와 스파게티의 맛도 모르면서 막연히 그리워하며 단숨에 그의 작품들을 섭렵하며 나 스스로의 의식을 그의 영향으로 채워나갔던가. 최근에 다시 양을 쫓는 모험을 정독하면서 그 결말이 그리도 슬픈 결말이었던가 하고 바다를 메우느라 얼마 남지 않은 모래사장을 찾아가서 울었던 '나'의 마음을 흉내내며 속으로 소리죽여 울어보았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 '나'는 30살이다. 작중 묘사에 의하면 몇 개월 후면 서른이 된다고 하지만, 우리나이로 치면 서른, 몇 개월 후면 서른하나가 되는 나이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내 나이와 비슷하다. 나는 약 12년쯤 전에 고3때 읽었던 소설을 실로 12년만에 다시 처음부터 정독하면서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로 작품을 즐겨 보았던 것이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독서였지만... 아니, 텍스트 파일을 전화기에 집어넣어 읽었으니 독서라기엔 무리가 있지만. 오해가 있을 까봐 변명해 두자면, 나는 이미 양을 쫓는 모험을 비롯한 하루키씨의 소설 번역본은 모두 가지고 있다. 다만 그 무게와 부피 때문에 텍스트 파일로 다시 한 번 읽어보았을 뿐. 뭐 아무튼.
어쩌다 약속도 비고 지갑도 빈 주말, 냉장고에 들어앉아있던 스파게티 소스와 다른 재료들을 볶고 끓이고 삶아 스파게티를 만들고, 스파게티 국수를 삶고, 맥주와 프링글스와 스파게티를 마시고 먹었다. 어쩐지 하루키적인 삶이다. 한동안 집에서 만든 요리라고는 라면과 볶음밥 뿐이었는데, 얼마전부터는 또 뭔가 실험적인 짓거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요리고 내가 먹어치울 뿐이지만 그럭저럭 먹어줄만은 하다. 적어도 탈도 나지 않고.
내가 개인적으로 꼽는 하루키씨 최고의 작품은 청춘3부작의 완결편인 댄스 댄스 댄스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노르웨이의 숲이나, 하루키씨 최장편 태엽감는 새 연대기나, 밀레니엄 이후 최고 작품 해변의 카프카도 있지만 누가 뭐래도 내 20대 초반을 지배했던 작품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은 댄스 댄스 댄스다. 잘난 듯이 키보드를 두들기고는 있지만 댄스 댄스 댄스를 마지막으로 정독한 것이 언제였던가. 아마도 작년보다는 더 전인 것 같은데. 노르웨이의 숲 주인공인 와타나베가 위대한 게츠비를 그렇게 대했듯, 머리맡에 두고 뽑아내어 아무곳이나 펼쳐서 한바탕 읽어내려가고-시간이 허락한다면 거기서부터 끝까지 읽어버렸던, 그런 작품이 내게는 댄스 댄스 댄스 였기에 오히려 1권 첫페이지부터 정독하는 일은 대학 졸업 후 한 번도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전작에 해당하는 양을 쫓는 모험은 내게서 의외로 거리가 있는 작품이었다. 청춘 3부작을 관통하는 작품이자 댄스 댄스 댄스의 전작. 딱 그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나 보다. 키키의 존재와 양사나이, 양박사, 이루카-돌고래-돌핀 호텔, 쥐, 양, '나'. 그 무대 해설의 작품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나보다. 실로 '나'같은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 번 읽으면서 느꼈다. 그리고 다분히 하루키적인-거기에 건프라와 포스팅은 빼야겠지만-주말에 스파게티를 씹으면서 맥주를 마시는 저녁에 중2병이 도진 탓도 있겠지만. 도대체 30이 넘어도 중2병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윈앰프는 마침 미스터 칠드런의 쿠루미를 연주한다. 상실, 성찰, 희망, 슬픔. 다시는 다가가서도 안되고 다가갈 수 없는 것을 뒤로 하고서 그리움에 희망과 다짐을 던지며 슬픔을 토해내는 노래. 내일 아침 냉정한 머리로 보면 실소를 자아낼 것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약간의 맥주가 머리에 전한 약간의 취기와 함께 키보드를 두들기게 만들고 있다. '나'는 멋진 귀를 가진 그녀가 여러가지를 찾아내어 주고 이끌어 주고 기다려 주는 동안에도 그저 양을 생각하고 셜록홈즈를 생각하고 술을 마시고 섹스를 하고 잤다. 내 인생도 그다지 다를 바 없이 굴러가고 있다. 내 주변에 널린 멋진 귀를, 멋진 뇌를, 멋진 코를, 멋진 눈을, 멋진 목소리를, 멋진 몸집을 가진 사람들이 머물러 주고 있는데도 난 그걸 당연히여기고 문제 있는 삶을 살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떠올린다.
...지난주에 걸려온 몇 통의 전화와 몇 개의 문자에 나는 그냥 다음주 쯤 보자는 상투적인 답변을 남겼더랬다. 그러고보니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꼬리를 엮어본지가 언제였더라... '나'의 바다와 방파제는 메워졌지만 울 수 있는 모래사장은 남아있었다. 돌아갈 고향집이 없어진 나는 돌아갈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을 위해서 뭔가 남겨나가야 하지 않을까.... 검은 옷의 남자가 쫓으라고 지시하고 나를 빙빙 돌리기 전에 내가 좀 알아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