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레볼루션으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또다시 겨울이 찾아올 때 다음 리지 레이서가 찾아왔다. 이번엔 리지(Ridge)가 아닌 레이지(Rage)가 되어서. Rage는 분노, 격노라는 뜻도 있지만 격정, 흥분, 열광, 사나움 등의 뜻도 있다. 산등성이(Ridge)를 내달리며 코너를 공략하던 게이머들은 이제 보다 열정(Rage)적으로 달려야 한다는 뜻이었을까. 레이싱 게임 자체만을 제공하던 시리즈는 세 번째 작품(아케이드판 리지2-레이브 레이서를 포함하면 더 많지만)에 와서 보다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전용 게임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다. 레이지 등장 이후 5편을 제외하고 모든 시리즈에 꼬박꼬박 등장하고 있는 리지 시리즈의 히로인 나가세 레이코가 오프닝에서 너무나 고른 치열을 보여주며 데뷔하기도 했고, 미니게임을 클리어하면 주어지던 차량 추가 방법 대신 레이스의 결과에 따른 보상금으로 차량을 구입하고 튜닝하는 방식으로 변경된 점은 플레이어가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 게임에 몰입하여 즐겨야 한다는 것으로, 전작에 없던 많은 요소들과 함께 상당히 바람직한 변화였다고 하겠다.
길어서 가립니다.
눈에 띄는 변화를 몇가지 짚어보면 먼저 게임의 분위기를 들 수 있겠다. 전작이 밝고 경쾌한 남성의 목소리와, 1편의 사운드 트랙 1번곡 Ridge Racer로 대표되는 밝고 활기찬 이미지를 통해 다소 가볍지만 흥겨운 아케이드의 이미지를 어필한 게임이었다면 레이지는 다소 무겁고 강렬한 음악과 분위기로 시작되는 오프닝에서부터, 찌뿌리고 어두운 하늘 밑에서 달리는 느낌의, 회색빛으로 가득찬 느낌이 전해져 오는 레이싱 화면까지 어딘가 광(狂)적이 되어야 한다는 강요를 느끼게 하는 면까지 있었다. 그리고 게임은, 손 댄 사람을 아주 오랫동안 달리게 만드는 열광적인 무언가를 느끼게 했었다.
게임 내적으로 보면 가장 바뀐 것은 차량의 class 시스템이었다. PS3로 발매된 리지7까지도 이어오는 그립-마일드 드리프트 타입의 차량 에스페란자를 위시한 전혀 새로운 디자인의 차량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각각의 차량에 클래스가 부여되어 보다 상위 클래스에 도전하여 이기려면 좋은 성적을 거둠으로써 얻을 수 있는 포인트를 모아 원하는 상급 차량을 장만해야 하는 식의 게임 스타일이 확립된 것이다. RRR까지의 가벼우면서도 경쾌한 레이싱 감각을 기대했던 플레이어들에게 다소 빡빡해진 느낌도 없지는 않았지만, 달리는 감각은 보다 진화했으면서도 코스 레코드 갱신 외의 즐길 거리가 생겼다는 점에서는 환영받을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클래스 상승에 따른 난이도 역시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되어 있어서 상당한 시간을 느긋하게, 하지만 레이싱 자체는 치열하게 즐길 수 있어진 점이 아주 좋았다.
남코 최고의 이미지걸, 나가세 레이코 첫 등장. 워낙 미인캐릭터가 많은 남코지만 그 중 독보적인 한 사람.
역시 처음 등장한 메이커 소개. 이 메이커는 플랫폼이 바뀌어도 일부 유지되어 7편까지 이어진다.
클래스 시스템 외에도 자신만의 차량으로 바꿀 수 있는 스티커 편집 모드와 컬러링 조절 모드가 준비되어 있어 2008년 현재의 레이싱 게임들에 비교하면 약하긴 하지만 당시로서는 제법 재미있는 자신만의 차량만들기 또한 해 볼 수 있었다 하겠다.
아케이드에서 데이토너의 너무나 연약한 경쟁상대로 출발한 리지 레이서는 레이지에 와서 탄탄한 가정용 레이싱 게임 브랜드로 거듭났음을 분명히 하고, 레이지에서 데뷔한 리지 레이서들의 영원한 히로인 나가세 레이코와 함께 더욱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레이싱 게임으로의 진화를 기대케 하며 다시 한번 Ridge의 이름을 달고 1999년 세기말을 향해 달려가게 되었던 것이다.
리지 레이서 Type4 - R4
리지 레이서가 가정의 TV 화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플랫폼 플레이스테이션(PS)으로 발매된 마지막 리지 레이서. 열광적인, 광기어린 레이싱으로 변화했던 레이지의 다음 작품은 다시 Ridge로 돌아온 리지 레이서 타입4 - R4였다. 발매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오프닝 영상과, 다소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풍기던 레이지와 정반대의 축제 분위기를 한껏 담고 있는 R4의 레이싱 분위기는 20세기의 마지막 산등성이를 흥겨운 트랙으로 플레이어를 인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레이지에서 고른 치열의 미녀로 자리매김한 나가세 레이코는 섹시하면서도 아름다운 리지의 마스코트 레이싱퀸으로 완전히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으며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오프닝은 차라리 한 편의 미려한 뮤직비디오였다. 오죽했으면 지금도 현역인 국내의 모 탤런트겸 여가수의 뮤직비디오로 패러디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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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오프닝이 지나고 나서 게임으로 들어가면 Real Racing Root '99이라는 R4의 시나리오 라인 위에서, 난이도 별로 펼쳐지는 4편의 레이싱 드라마의 주역 드라이버로써 트랙을 달리게 되는 플레이어가 있었다. 제작사 남코의 마스코트 캐릭터 팩맨을 연상케 하는 노란 이미지 컬러 위에서 플레이어는 그립과 드리프트 타입으로 구분된 4개의 선호하는 차량 메이커, 난이도로 구분된 4개의 레이싱팀을 선택하여 레이스 성적에 따른 차량 튜닝-획득 분기를 통해 Real Racing Root '99을 해쳐나가게 되는 식이었다. 이는 클래스 상승에 따른 신차종의 등장과 튜닝을 제시했던 레이지가 다소 플레이어의 개입이 약하면서도 포인트만 있으면 어떤 차량이든 구매하여 사용할 수 있었던 방식과는 다른, 플레이어의 성적(실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컨트롤 가능한)에 따른 분기를 체험하기 위해 Real Racing Root '99를 여러번 해쳐나가야 하는 식으로 반복 플레이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결국 반복 플레이라는 과정은 같지만, Real Racing Root '99라는 시나리오 라인을 따라가면서 스폰서 캐릭터와의 변화하는 대화와 팀의 상황을 느낄 수 있는 간접체험 유도를 통해 보다 즐겁게 반복 플레이를 즐겨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방식이었다 하겠다. ...물론 언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모조리 스킵하고 레이싱 자체만을 즐겼겠지만.
2008년 현재 R4는 리지레이서 타입4가 아니라 모 인기 휴대용 게임기의 세계적 주변기기의 명칭이 되어버렸지만, R4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1999년의 언젠가를 떠올리며 묵직한 노란색을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2차원 도트로 표현되던 레이싱 게임, 3차원이지만 핸들과 페달이 달린 오락실 통체에서만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고 생각되던 레이싱 게임. 그런 레이싱 게임의 재미를 안방으로 제대로 옮겨와, 쉽게 배울 수 있으면서도 코너 공략과 속도감의 만끽이라는 레이싱게임의 재미를 가정용 게임기 유저들에게 각인시켜 플레이스테이션용 오리지널 레이싱 시리즈 리지레이서는 그 4번째 작품과 함께 20세기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다소 불안한 다음세기 하드웨어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시작하였던 것이다.